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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과한 노인 공공돌봄…민간 주도가 만든 부조리의 연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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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1-30 14:06 조회 18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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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돌봄 어디로 가나

1% 불과한 노인 공공돌봄…민간 주도가 만든 부조리의 연쇄

배문규 기자


공공 돌봄서비스 전담기관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소속 돌봄노동자들이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예산 삭감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출연금으로 168억원을 제출했지만 시의회에서 100억원을 삭감해 기관 운영 자체가 어려워졌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이 새롭게 취임한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서비스원 구조조정 작업이 잇따르면서 공공 돌봄의 존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사진 크게보기

공공 돌봄서비스 전담기관인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소속 돌봄노동자들이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예산 삭감 규탄 집회를 하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출연금으로 168억원을 제출했지만 시의회에서 100억원을 삭감해 기관 운영 자체가 어려워졌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이 새롭게 취임한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서비스원 구조조정 작업이 잇따르면서 공공 돌봄의 존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코로나19 아니었으면 어머니를 집 근처 요양원에 모실 생각도 했죠. 사시던 집에서 어머니를 보내드리려 재가 돌봄을 시작했는데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심정입니다. 지난 3년여 동안 민간에 맡겨진 요양서비스의 부조리를 온몸으로 겪었는데 정부에선 복지도 민간 주도로 하겠다니 황당할 뿐이죠.”

정경은씨(52)의 어머니는 2019년 7월1일 뇌출혈로 쓰러졌다. 한 달 동안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중환자실, 다시 일반병동을 거쳐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을 옮겼다. 어머니가 재활 도중 골절을 입은데다 코로나19 감염병이 확산하면서 2년여를 병원에서 보냈다. 선택의 시간이 찾아왔다. 거동이 어려워 장기요양 1등급 판정을 받은 어머니를 어디에 모실 것인가. 노인학대 등 민간 요양시설에 대한 부정적 정보를 접하면서 공공이 직접 운영하는 요양원을 알아봤다. 놀랍게도 공공 직영 요양원은 전국에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요양원, 서귀포공립요양원 등 단 두 곳에 불과했다. 대기자가 많아 ‘입원하려면 10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지자체가 설립한 사회서비스원도 알아봤지만, 거주지인 서울 성북구에선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결국 구에서 평가 1등급을 받았다는 방문요양센터에 연락을 했다. 2021년 8월14일 어머니가 퇴원을 했다. 처음 소개받은 요양보호사는 오후 5시면 퇴근하겠다고 해 돌려보냈고, 다시 연결받은 요양보호사는 경험이 부족해 보였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어머니 상태가 나빠져갔다. 동생들 성화에 못이겨 설치한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 어머니가 학대를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업체가 서비스 이용일을 은근슬쩍 늘리는 식으로 인건비를 과다계상해 갈등도 있던 터였다. 지인들에게 수소문해 사회적협동조합에서 새로운 요양보호사를 소개받아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문제의 요양센터를 신고도 못했어요. 새로운 곳을 찾지 못하면 거기에 다시 연락해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었으니까요. 나중에 건강보험공단에서 연락이 왔는데 학대를 저지른 요양보호사가 정작 업체에선 임금 체불을 당해 근무 여부를 확인하려는 전화였습니다. 부조리한 노인돌봄 시장 안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이기도 했던거죠.”

5남매 중 맏딸인 정씨는 돌봄에 맞춰 일상을 재조립했다. 요양보호사는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한다. 정씨는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출근 전까지 돌봄을 하고, 근무 시간을 조정해 오후 6시 전에 집으로 돌아와 요양보호사를 보낸다. 정씨가 오후 10시30분 잠자리에 들면, 밤 시간에는 아래층 사는 동생이 들여다본다. 주말에도 다른 형제들이 정씨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돌봄을 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공립 시설이었으면 어느 정도 요양보호사 검증이 됐을 거고, 인건비를 속이는 일도 없었겠죠. 돌봄 당사자가 되어보니 10년 안에 노인돌봄이 한국사회 최대 이슈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홍 유니폼과 노란 티셔츠

국공립어린이집과 달리 국공립노인요양시설은 찾아보기 어렵다. 노인장기요양 서비스 제공 기관의 99%가 민간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장기요양기관 수는 재가 1만9621곳, 시설 5763곳으로 총 2만5384곳에 이른다. 이중 민간기관이 2만5140곳이었으며, 국공립기관은 244곳으로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자체가 만든 공립시설 역시 실제 운영은 민간 위탁으로 이뤄진다. 앞서 소개한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요양원, 서귀포공립요양원은 운영 주체와 실제 운영을 모두 공공에서 맡는 극히 이례적인 사례다.

노인돌봄이 완전히 민간에 내맡겨진 것은 노인장기요양 서비스의 시작과 궤를 같이 한다. 노인돌봄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지자 정부의 공적 대응으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가 도입됐다. 국민들의 돌봄 부담을 던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방식이 문제였다. 요양서비스 공급을 단기간에 늘리려다보니 민간 영리업자들이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었다. 사회보험(장기요양보험료)이라는 공공 재원을 이용한 제도라면 서비스 공급 역시 공공성을 띠어야겠지만, 영리 추구를 억제할 장치가 빈약했다. 지난 14년 동안 서비스의 양 자체는 수백배 늘었지만, 질낮은 서비스에 대한 이용자들의 불만부터 요양보호사의 열악한 처우까지 여러 문제가 분출하고 있다. 정씨처럼 노인돌봄이 필요한 상황에 맞부딪치면 허약한 공공성에 깜짝 놀라게 된다. 돌봄노동자들도 노인돌봄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공공성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왜일까.

 


정인숙 요양보호사(왼쪽)와 강미숙 요양보호사가 지난달 12일 경기 성남시에 있는 일터로 나서기 전 자신의 근무복을 입은 채 길 위에 서있다. 시립 요양원에서 일하는 강씨의 분홍 유니폼과 민간 요양원에서 일하는 정씨가 직접 구입한 노란티셔츠·검은바지가 대조된다.    강윤중 기자사진 크게보기

정인숙 요양보호사(왼쪽)와 강미숙 요양보호사가 지난달 12일 경기 성남시에 있는 일터로 나서기 전 자신의 근무복을 입은 채 길 위에 서있다. 시립 요양원에서 일하는 강씨의 분홍 유니폼과 민간 요양원에서 일하는 정씨가 직접 구입한 노란티셔츠·검은바지가 대조된다. 강윤중 기자

“공공과 민간의 차이요? 옷부터 다르잖아요.” 지난달 12일 경기 성남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미숙씨(55)와 정인숙씨(54)는 성남 소재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다. 강씨의 단정한 분홍색 유니폼과 정씨가 온라인쇼핑몰에서 샀다는 노란티·검은바지가 대조됐다. 시립 노인보건센터에서 일하는 강씨는 회사에서 피복비가 지급되지만, 민간 노인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정씨는 위아래 색깔만 맞춰서 근무복을 마련한다. 그깟 근무복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중년여성들에게는 직장에 다니는 증명이며 요양시설의 서비스를 추정해볼 수 있는 척도도 된다.

강씨가 일하는 센터는 노인이 150여명에 요양보호사는 71명. 정씨의 시설은 노인 60여명에 요양보호사는 27명이다. 인력배치 기준이 2.5 대 1로 제도적으로 정해져 있어서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최저 임금 수준에 수당이 약간 붙는 임금 체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근무시간은 데이·이브닝·나이트 3교대이다. 민간 시설은 야간 휴게시간을 늘려 실제 근무시간을 늘리곤 한다. 야간수당을 줄이려는 꼼수다. 하지만 긴 휴게시간을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의 고령화 탓이다.

공공과 민간의 차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요양보호사들의 연령대다.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사는 요양보호사들의 평균연령은 59.6세(2020년,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실)로 노동자의 법정 정년(60세)에 육박한다. “공공기관 정년이 있다보니 60세 이하만 있죠. 저희는 40대도 있어요. 체계가 잡힌 직장이라 젊은 사람들도 유입되는 것 같아요.”(강미숙) “저희는 제가 막내에요. 평균 연령은 60대일 거 같고, 최고령은 68세요. 자녀들이 성장하고 구직에 나선 여성들이 기술은 없고 나이는 많다보니 요양보호사를 선택했죠. 하지만 처우가 열악해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지 않으면서 일하던 사람들이 나이만 먹고 있어요.”(정인숙)

요양보호사의 열악한 처우는 서비스 질 저하로 이어진다. 공공과 민간의 서비스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뜻밖에도 목욕이라고 한다. “저희는 주 2회 어르신 목욕을 해드려요.”(강) “엄청나지! 보통 민간 시설은 일주일에 한 번이나….”(정) “시설에서 목욕이 가장 힘들어요. 거동도 못하는 어르신을 옮기고, 벗기고, 씻기고 다시 입힌다고 생각해보세요. 재가급여에선 목욕 수가를 따로 받는데 저희는 시립이니까 그냥 하는거죠.”(강) “누군가 연차라도 쓰면 혼자 20명을 돌보게 되는 거에요. 돌봄의 부족을 넘어 어르신 안전까지 걱정되죠.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겨드리고 싶어도 사람이 지치면 할 수가 있나요.”(정)

공공이든 민간이든 열악한 건 비슷한데 공공 시설에는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고 했다. “정해진 최저선 이상은 반드시 하죠. 영리 추구가 아니다보니 돌봄을 위한 투자도 이뤄져요. 이를테면 어르신을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전동 리프트를 들였는데 기계가 반듯하게 앉히질 못해서 요양보호사 일은 늘어요. 그래도 서비스 질이 높아지니 어르신들은 좋겠죠. 운영은 민간이 하더라도 시립이다보니 관리감독이 되고, 시민들이 민원을 넣을 수도 있고요.”(강) “민간은 시설장 뜻대로죠. 고령 노동자들은 이직할 데도 마땅치 않으니 부조리를 겪어도 참을 수 밖에 없고요. 서비스가 좋을 수 있나요.”(정)

공공 돌봄 확대가 왜 어려울까

민간이 주도하는 노인돌봄 시장의 부조리는 연쇄적이다.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 업체들은 정부 수가와 지원금이 정해져 있다보니 인건비를 줄여 수익을 키우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요양시설의 비리와 꼼수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요양보호사들의 처우는 나빠지고 이용자들에게는 질 낮은 서비스로 이어진다. 그래서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이 돌봄 서비스 향상과 직결되며, 처우 개선을 위해 관리감독의 강화와 공공시설 확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요양보호사들은 2017년 말 처우개선비 폐지 반대 투쟁을 계기로 본격적인 결집에 나섰다. 보건복지부에서 고된 노동에도 최저임금을 받는 요양보호사들에게 10만원씩 지급하던 처우개선비를 최저임금 인상을 빌미로 없애면서 눌려있던 분노가 터져나온 것이다.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 전지현 사무처장은 “당시 최저임금 인상분을 반영하면 월급이 20만원 늘어난다고 했는데 5만원 정도에 그쳤고, 근로계약서나 급여명세서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속출했다”면서 “노조를 결성해 시설 측에 교섭을 요구하자 폐업을 위협하고 나섰다”고 했다. 문제제기로부터 여러 해가 지났지만, 전국돌봄서비스노동조합이 직장 갑질, 임금 체불 등으로 대응하는 사업장이 지금도 30여 곳에 이른다.

감사원이 2020년 발표한 ‘노인요양시설 운영 및 관리실태’에서는 부적정한 회계 운용 등 19건의 문제 사항이 지적됐다. 전국 3516개 시설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요양시설이 운영비를 쓰고 남긴 잉여금이 해마다 1000억원이 넘었으며, 시설에서 법인으로 잉여금을 무단 전출한 사례도 한 해 100건 이상 적발됐다. 경영이 어려워 요양보호사 처우를 개선할 돈이 없다는 업체들의 주장과는 사뭇 대비된다. 노인 학대 사건이 발생한 노인요양시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보건당국의 관리 소홀로 행정처분을 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5~2019년 지자체 116곳이 장기요양기관 노인 학대 사례 287건을 통보받았으나, 이중 45.6%(131건)에 대해서만 행정처분을 내렸다. 행정처분을 하지 않은 사유는 ‘일회성이거나 경미한 사례’(58건), ‘정서적·경제적 학대에 대한 제재 규정이 없다’(23건) 등이었다. 감사원은 보건복지부가 문제를 알고도 관련 제도를 ‘늑장 개선’ 하는 등 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에는 코로나19로 요양시설에 격리됐던 요양보호사들에게 주어진 ‘코호트 격리수당’을 시설 측에서 떼먹었다는 의혹이 복지부 실태조사로 확인되기도 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복지부가 ‘코호트 격리 요양시설 추가 급여비용’을 받은 220개 기관을 점검한 결과 17개 기관이 받은 4억9000만원은 요양보호사들에게 미지급됐고, 2개 기관이 받은 1000만원은 물품 구입·회식비 등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민간 위주 노인돌봄 시장의 부작용이 드러났음에도 ‘민간 99%’의 현실은 공고하다.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공통된 얘기는 “한번 튼 물길을 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지현 사무처장은 “소정의 법적 기준만 맞추면 설립이 가능해 민간 시설이 난립하게 됐고, 시의원이나 재력가 등 지역사회 유지들이 업체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보유한 이익집단의 저항 앞에 당국의 감독은 느슨해진다. 문제 시설을 폐쇄한다고 했을 때 요양보호사 일자리, 시설에 있던 노인들의 이송 등 현실적 문제와도 맞닥뜨리게 된다. 박대진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민간 영역에도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처럼 다양한 유형이 있을 수 있는데 한국은 영리업자들에게 시장을 전부 넘겨준 상황”이라면서 “관리·감독을 강화하려 해도 기존 업무로도 벅찬 지자체 노인복지과가 요양시설 관리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9월 이전 정부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 복지’로 규정하고, ‘선별 복지’를 우선에 두는 복지 정책의 큰 그림을 제시했다. 핵심은 ‘약자 중심의 현금 복지’, ‘누더기 복지체계 통폐합’, ‘서비스 복지의 민간 주도’이다. 이중 전 국민 수요가 있어 시장 규모가 큰 돌봄·요양 등 서비스 복지는 민간 참여를 통해 서비스를 고도화하겠다고 했다. “팍팍한 재정 여건 속에서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민간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묶어내 사회 프로그램의 질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민영화 논란에 대해선 “정부가 재정적으로 책임질 부분은 책임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돌봄 공공성 강화’를 위해 설립한 사회서비스원이 지방선거 이후 전국 곳곳에서 존립 위기에 처하고, ‘의료민영화법’으로 비판받아온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입법에 다시 시동이 걸리면서 복지 민영화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민간 업체라고 반드시 나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며, 무엇보다 민간 업체들이 현재 노인요양 시장의 주역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어떻게 더 나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둬야 한다. 돌봄 노동자들과 연구자들은 윤석열 정부가 돌봄 공공성 강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민간 주도라는 잘못된 처방을 내놨다고 비판한다. 이미 민간 주도로 부조리가 심화하고 있는데 민간 활성화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상적이라면 민간 시장에서 경쟁에 의해 나쁜 서비스 업자는 밀려나고 좋은 서비스 업자는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노인장기요양 시장은 정부의 수가에 의해 통제받기 때문에 시장 메커니즘으로만 작동할 수 없다”면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닌 편법을 잘 쓰는 곳이 오히려 생존에 적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7년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이 14%를 넘어서며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026년 고령인구가 20%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장은 “이미 민간 위주인 복지 상황에서 민간 주도를 확대한다는 것은 공공 자체가 사라진다는 의미”라면서 “노인돌봄은 인권 측면에서도 공공이 더욱 확대되어야 하는데 민간 주도라는 것은 현상 유지와 다름없다”고 말했다.

기로에 선 노인돌봄의 미래

[공공돌봄 어디로 가나]1% 불과한 노인 공공돌봄…민간 주도가 만든 부조리의 연쇄

돌봄 서비스 영역에서 중국동포의 역할은 지대하다. 간병인과 요양보호사 분야의 주역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월 중국동포와 고려인의 가사·돌봄 도우미 시장 진입 문턱을 더욱 낮췄다. 돌볼 노동자 공급 부족에 대처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가하면 최근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한 ‘배설 케어 로봇’이 일부 요양시설에 도입됐다. 노인돌봄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응하려면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주민과 로봇으로 해결이 가능할까. 돌봄은 단순한 노동이기 이전에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와 정서적 유대가 중요하다. 전지현 사무처장은 “방문 요양은 한국말 소통이 자연스럽지 못하면 돌봄의 의미가 없다”면서 “돌봄 종사자 인력난은 낮은 처우의 문제인데 정부가 다른 해법만 찾고 있다”고 말했다.

돌봄 종사자들은 민간 활성화가 불러올 양극화도 우려한다. 대규모 자본의 진출이 서비스를 다양화할 수 있지만, 일부 ‘럭셔리 요양 서비스’가 일반 시민들의 수요에 얼마나 닿을 수 있을까. 규제가 풀리면 비급여 항목을 중심으로 부담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농협은 재가요양서비스에 진출했고, KB금융은 데이케어센터를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민간보험사의 요양서비스 분야 진출과 관련한 제도 개선을 검토하기로 하면서 보험사들의 기대감도 높아진 상황이다. 금융회사들은 요양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여긴다. 박대진 정책국장은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사회 통합돌봄사업은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앤다는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보건의료·복지·요양·돌봄을 통합해 규모가 커지면 대규모 자본이 들어올 유인도 커진다”면서 “돌봄 서비스를 프랜차이즈화해 완벽한 시장화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돌봄 공공성 강화는 하나의 처방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공공 확대가 중요한 것은 공공 서비스가 일종의 기준점으로 작용하면서 민간의 서비스 질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육서비스 영역에선 국·공립 어린이집이 민간에 비해 높은 교육의 질과 신뢰도로 부모들의 선호를 받고 있다. 하지만 노인돌봄 서비스에선 공공이라는 대조군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이용자들이 서비스 수준을 가늠하기도 어렵다. 최근 주목받는 제도 개선 방안은 ‘공공요양 기본 공급률제’이다. 돌봄 공공성 강화를 위해 전체 장기요양 서비스 중에서 공공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양을 일정 비율 이상 유지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자는 것이다. 최혜지 교수는 “지역 간 서비스 불균형이 있기 때문에 지자체 별로 요양서비스 총량 중 공공요양 비율 최저선을 정하고 공공이 그 이상을 공급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가 요양의 경우 난립해있는 영세 업체들을 정리하고 시설 규모의 확대가 필요하다. 일정 규모 이상인 시설에선 노동자들의 처우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고, 이용자 입장에서도 여러 서비스를 한 곳에서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 사회의 노령화가 더욱 심화되기 전에 공공 노인돌봄 서비스의 토대를 강화해야 한다. 최혜지 교수는 “돌봄 위기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사회보험을 선택했다는 것은 국가가 중심이 되어 해결하겠다는 ‘돌봄의 사회화’ 선언이었고, 그래서 시민들도 기꺼이 보험료를 내고 있는 것”이라면서 “돌봄이 국가·지방자치단체라는 공공의 책임인 이유”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