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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약으로 버티며 어르신 돌봐도 허덕이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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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3-29 10:29 조회 51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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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과 겨울 중간쯤에 서 있었다. 다행인 건, 세월이 지나며 따뜻한 봄기운을 더 많이 느꼈다는 점이다.

조옥희(60·사진) 씨는 요양보호사가 된 후 10여 년을 담담히 돌아봤다. 마음에 상처도 많이 생겼지만, 어느덧 성장한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요양보호사야'라고 자랑스레 이야기할 때면 지난 아픔을 잊는다는 그다.

옥희 씨는 10여 년 전 시아버지를 돌보고자, 가족요양을 하고자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에 뛰어들었다. 젊어서는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몸이 아파 일을 못하는 남편을 대신해 가장 역할을 했다. 30년 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쉰이 됐을 무렵 옥희 씨는 다시 달려야만 했다.

시아버지만 돌보기에는 수입이 너무 적었다. 한 분 정도 더 맡았고 돌봄노동 길에 올랐다.

2014년 4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재가방문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며 가계를 책임졌다. 시작은 온통 상처였다.

"처음에 맡았던 어르신은 물세가 아깝다며 화장실 한 번 못 가게 했어요. 빨래도 도랑에서 해야만 했고. 겨울에는 솜바지를 입고 장갑을 끼고 목도리를 두른 채 일을 했죠."

4년이 흘러, 어르신이 센터를 바꾸면서 첫 인연도 끝이 났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다른 아픈 기억들이 스치는 건 어쩔 수 없다.

"한 어르신은 매년 김장 60~70포기를 하면서 아주 당연한 듯 저에게 시키기도 했죠.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 하면 센터에 연락해 담당자 교체 등을 요구했고요. 그러고 나서 다음날 찾아뵈면 평소보다 더 많은 일거리가 쌓여 있었죠. 너무 힘들어 센터에 하소연도 했죠. 돌아온 대답은 '어르신과 대화로 잘 풀고 마음을 맞춰 보라'였지만요. 참 서글펐어요."

자기 옆으로 오라고 말하더니 엉덩이를 툭 치고 가는 수급자, 자기네 집 텃밭을 매일 갈아 달라는 수급자도 있었다. 운동이며 시장 가는 일이며 함께하지 않으면 '사람을 바꾸어 달라'는 요구는 어김없이 나왔다. 함께 시장 가는 게 뭐 그리 어려우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매순간, 당연하듯 반복되는 무리한 요구는 그 강인했던 옥희 씨마저 지치게 했다.

시간당 임금은 딱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었다. 그마저도 교통비 등 이런저런 활동비를 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월 급여가 고정적이기라도 하면 좋으려만, 들쑥날쑥이다.

어르신과 병원을 함께 갈 때면 사비를 들여 택시를 타기도 했다. 정당하게 차비를 주는 어르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잦았다.

어르신 4~5명을 맡아 새벽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한 적도 있고 감기몸살 약을 먹어가며 어르신을 돌본 적도 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버틴 것도 맞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지친 옥희 씨를 달랜 건, 다시 어르신이었다.

"84세 되신 한 어르신은 친어머니보다도 더 따뜻하게 말해주곤 하셨죠. 3년을 보살피는 동안 항상 '추우니 몸 좀 녹이고 일하라'고 하셨죠. 일을 한다는 느낌보다는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듯했어요. 다른 어르신은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매번 '건강 조심하라'며 연락을 주시곤 했죠. 임종을 끝까지 지키며 마지막 가시는 길, 손잡아 드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보람과 아픔을 수없이 오가며 버틴 세월이었다. 비가 올 때면 온몸이 쑤시는, 지난 세월 얻은 병도 많지만 그래도 옥희 씨는 이 일을 놓치고 싶지 않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감염을 우려한 어르신들이 서비스 중단을 요구하면서 졸지에 일거리를 잃은 동료도 많아요. 저도 한두 분을 돌보는 데 그치고 있죠. 한 분당 하루 3시간씩 한 달 7~8번 혹은 하루 1시간 30분씩 한 달 30시간가량 돌봄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많이 힘들죠. 제 휴대전화기를 숨겨놓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갖다 버리는데 냉장고 음식을 빼간다며 쓴소리를 하는 등 짓궂은 일은 늘 있어요. 예전에 인연을 맺었던 어르신이 '잘 지내느냐'며 전화를 주는, 보람도 계속되고요. 지난 10년을 지나며 요양보호사로서의 자세가 마음가짐을 갖추게 됐어요. 제 돌봄이 필요한 분이 계신다면 언제든 달려가고 싶어요."

옥희 씨는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분이 있다는 생각'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했다. 항상 필요한 사람, 편안하게 의지할 수 있는 요양보호사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사회 곳곳에 누군가를 대신해 돌봄노동을 하는 수많은 옥희 씨가 있다. 도움을 주고 싶다는 그들의 행복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저마다 직업의식이 꽃피울 수 있도록, 감염병에 그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돌봄노동자 돌봄이 필요한 때다.

 

 

                                      
이창언 기자
이창언

un@idomin.com

시민사회부에서 일합니다. 각종 민원 등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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