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실업급여(구직급여)를 5년간 3회 수급한 사람부터 급여 액수를 삭감하는 등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내부 연구용역에서는 이같은 제재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얻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노동계에서는 코로나19로 실업이 늘어나고 고용보험 보장성이 높지 않은 한국 상황에서 수급 제재는 불안정한 노동환경 속 실업자에 대한 안전망을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29일 지난해 노동부가 발주한 한국노동연구원의 ‘구직급여 반복수급 원인 분석 및 제도개선 방안 검토’ 보고서를 보면, 구조적으로 단기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게 되는 노동자의 경우 이번 법 개정으로 선의의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노동부는 지난달 23일 구직급여를 5년 동안 3회 이상 수급한 사람부터 급여 액수를 깎고, 대기기간을 연장하도록 하는 내용의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3회 수급자의 경우 액수는 기존의 10% 줄고 2주간 대기하는 식으로 수급 횟수가 많아지면 액수는 최대 절반까지 감액되고 대기기간은 4주까지 늘릴 수 있게 했다. 실업급여는 실업자에게 소득을 지원해 재취업과 생계 유지를 돕는 대표적인 사회안전망 제도다.
노동부 개정안은 연구용역 결과와는 차이가 있었다. 연구진은 구직급여 수급 현황을 분석한 결과, 같은 기업에서의 반복 수급은 3회차부터 제재하더라도 이직한 직장의 경우는 4회차부터 제재를 적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다른 기업 반복 수급의 경우 3회차는 1·2회의 연장선에 있는 특징이 많고, 3년간 3회 수급자가 5년간 4회 수급자로 발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활동이 활발한 30대 남성의 경우 3년간 구직급여를 3회 수급했더라도 이후 다시 구직급여를 신청(첫 구직급여 신청 5년 내)하지 않은 비율이 40%였다. 이 비율은 40대는 35%, 50대 25%로 이들 그룹의 경우 법 개정시 추가 구직급여 신청을 하지 않는데도 수급액 삭감이라는 피해를 입게되는 셈이다.
연구진은 “3년간 3회 수급자면 이후에도 매년 수급할 것 같지만, 실제 이들 중 고도 반복 수급으로 바뀌지 않는 사람이 10명 중 4명이나 된다”며 “이들부터 제재하면 선의의 피해자가 상당히 생길 수 있는 구조”라고 했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피해가 클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진은 개인의 도덕적 해이는 구직급여 반복 수급의 주된 요인이 아니라고 봤다. 대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일자리 사업이나 해상운수업 등 일부 업종의 반복적인 단기 취업과 단기 실업 구조를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연구용역은 반복 수급 실태를 조사한 참고자료이고 반드시 연구용역대로 (정책 결정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노·사와 전문가들이 논의를 거쳐 (개정안의) 결론을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또 “3·4·5회 수급 시 (액수)제한 비율을 다르게 정했고, 사업장 제재도 개정안에 포함돼있다”고 했다. 노동부는 적극적 재취업 노력이 있는 경우, 임금이 현저히 낮은 경우, 입·이직이 빈번한 일용직 노동자인 경우 등은 수급 제재 대상 횟수 산정 시 제외하도록 했다. 단기 비자발적 이직자가 많은 사업장은 고용보험료를 조정(인상)하는 방안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노동부가 반복 수급 제재 방안을 꺼내든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실업이 늘면서 실업급여 지급이 많아졌고, 고용보험기금 재정도 급속도로 고갈됐기 때문이다. 노동계에서는 근본적으로 보험료 인상을 논의하지 않고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재정 건전성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노동자들이 왜 실업급여를 반복 수급하는지, 그 배경이 되는 불안정한 고용 상태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고 반복 수급이 마치 죄를 짓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정부도 제도를 그렇게 바꾸고 있다”며 “문제의 진단과 대처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개정안은) 노동자가 불안정한 고용 상태를 증명하라고 떠넘기는 것”이라며 “횟수를 제외시킬 수 있는데 몰랐다거나 사업주의 태도 등 상황상 원활히 절차가 이뤄지지 않으면 실업급여를 못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실업급여 지급 기간이 4~9개월로 길지 않고, 자발적 이직자에 대해서는 실업급여가 도입되지 않는 등 보장성이 다른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사회보험 보장성은 외국보다 낮다”며 “모니터링을 통해 부정 반복 수급자가 있으면 당사자에게 패널티를 주고, 단기 계약 일자리를 전전하는 사람에게는 중장기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정부가 실업급여 제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고민해야 된다”고 했다.